1600년대 초, 유럽의 사람들은 갈증을 푸는 음료는 물이 아니라 술이었다.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과 지중해 연안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흑사병 때문이었다. 유럽의 인구는 흑사병으로 총 7천5백만 명에서 2억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의 절반 가량이 사망할 정도였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에서는 지역에 따라 인구의 80%가 희생되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중국의 경우 흑사병은 원나라 시기인 1334년 허베이에서 창궐하여 인구의 90%가 사망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대신 당시 사람들은 하루종일 술에 취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앙은 엎친데 덮친다고 했던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생기고 만다. 와인을 만들어내는 포도 나무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때는 신대륙이 발견되고 본격적인 대항해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커피를 포함한 향신료 등 다양한 먹거리들이 본격적으로 개척되고 교역되고 있었다. 포도도 그 중의 하나였다. 미국은 그 땅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포도가 자라고 있었다. 유럽인들에게 이것은 새로운 기회의 발견이었다. 다른 환경의 땅에서 자란 다양한 야생의 포도는 곧 새로운 와인 산업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미국산 포도는 와인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이 났고 대신 식용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교역의 과정에서 포도만 수출입을 한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포도 나무 묘목까지 이동을 한 것이었다. 유럽산 포도나무를 미국에 심어서 재배하고, 미국산 포도 나무를 유럽 땅에서 재배를 시도했다. 문제는 미국산 포도 나무 뿌리에서 기생하는 진드시 벌레였다.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 때 분비되는 침 물질 때문에 항체반응이 생겨 피부가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진드기가 뿌리의 양분을 뽑아먹으면서 비슷한 반응을 일으켜 결국은 뿌리에 영양을 곱급하지 못해 괴사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미국산 포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필록세라에 대한 내성을 확보해서 문제가 없었지만, 유럽의 토양에 미국 포도나무가 심어지고 그 땅에 필록세라가 서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유럽의 포도나무는 20년동안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유럽 전력의 포토밭은 초토화되었고 남미지역을 제외하고선 포도를 재배하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으로까지 확산되어 와인 관련 산업은 그야말로 주저앉아 버릴 정도였다. 결국 시간은 걸렸지만 필록세라에 내성을 가진 미국산 포도 나무의 뿌리에 유럽 포도의 가지를 접붙이는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으면서 상황은 정리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유럽산 와인은 사실 미국산이라는 우스개소리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 필룩세라 진드기. 그러나 필룩세라는 세계 술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 와인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술에 대한 수요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서민들이 마시던 술이었던 위스키, 맥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맥주의 품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에일 맥주의 본격적인 생산은 물론 병맥주를 개발함으로써 맥주 유통 산업을 키우고, 토속주였던 스카치위스키가 영국의 상류층의 술로 자리잡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고급 위스키들이 본격 제조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동물과 식물의 교역시 원산지표시제도와 검역관리체계가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필록세라 효과

이처럼 전혀 상상치도 못한 지극히 미미한 작은 요소가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필록세라 효과라고 부른다.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라는 의미로 나비효과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은 초기의 변수 자체가 결과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개념적인 것에 국한된다. 반면에 필록세라는 실제 생태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존재가 있고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10년 사진공유서비스 인스타그램이 시작되자 처음엔 그저 셀카 사진을 업로드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수준의 작은 SNS활동이라고 치부되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패션/외식/여행 산업은 물론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산업들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었고 생각치도 못한 서비스들을 성공시키는 필록세라가 되었다. 그 열풍은 더욱 거세졌고 이제는 일반 미디어 대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세상의 대세를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외식 산업과 미국의 경제 금융 위기가 연결된 파인 캐쥬얼 문화를 예로 들어 보겠다.

2001년 미국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서 시작되었던 쉑쉑버거 열풍의 경우, 공원 복원 기금 마련 이벤트로 가격은 비싸지 않으면서 재료는 고급인 핫도그를 푸드카트를 통해 판매했는데 이것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며 2004년 첫 매장을 열게 된다. 야외에서 먹는 음식은 의례 저품질의 재료에 비싸기만 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신선하고 무항생제 사용의 고급 재료에 맛도 풍부하며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는 점이 어필하면서 관련 사진들이 SNS로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관심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쉑쉑버거의 창업자이자 요식업계의 대부 대니 마이어는 자신의 성공을 다른 데서 찾는다. 때는 금융위기의 시기였다.

2008년 금융계의 거대공룡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그때까지 끝없이 증폭되기만 하던 금융위기는 그야말로 폭팔했고, 뉴욕에는 참혹하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실업자들이 넘쳐났다. 이제 높은 생활 수준의 삶을 살던 사람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돈을 쓸 여유도, 연인이나 가족들과 마음 편하게 외식을 즐길 수도 없었다. 반면에 10-20달러 정도면 좋은 식재료로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고, 열렬한 직원들의 환대와 편안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매장의 쉑쉑이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쉑쉑이 주문을 받은 직후부터 조리를 시작하다보니 주문 대응 시간이 길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매출을 늘리자면 일반적인 패스트푸드 가게가 그러하듯이 주문이 많은 제품을 반가공 상태나 미리 조리해서 제공하겠지만 쉑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때문에 손님이 조금만 몰려도 가게 바깥으로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이 지점이 쉑쉑을 유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나가던 손님들은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렇게 줄이 서 있는거지?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길게 장사진을 펼친 사람들의 모습과 신선한 재료의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통에 오히려 내노라하는 유명인들까지 대열에 합류하면서 쉑쉑은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쉑쉑의 흥행과 더불어 요식업계는 패스트푸드에서 파인캐쥬얼(Fine Casual)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게 된다.

Biju's second location adds South Indian cuisine to Berkeley.

Biju’s second location adds South Indian cuisine to Berkeley.

즉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켜 주면서 건강한 재료로 주문시 조리하는 식당들이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패스트푸드 업계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만들어낸 필록세라 효과인 것이다. 연관된 예로 수제맥주 열풍도 마찬가지다. 2014년 조세법이 개정되며 소규모 양조기업들이 맥주를 유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맥주는 취향이나 브랜드로서가 아니라 생맥주, 병맥주, 캔맥주로 구분한다고 할 정도로 국내 맥주업계는 일부 대기업의 독과점 시장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산업에 미칠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균열의 지점은 역시나 생각치도 못한 지점에서 나타났다. 한미, 한EU FTA발효를 기점으로 대형마트는 세계맥주 코너를 열고 수입맥주들을 경쟁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온라인 쇼핑몰이 오프라인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엄청난 운영비용의 오프라인 대형마트는 경영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매장을 찾을 수 있는 동인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맥주였다. 술은 마진이 높지 않은 상품이지만 온라인으로 판매될 수 없기 때문에 대형마트로 고객을 유입하는 트래픽 상품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고객들은 갑자기 펼쳐진 수많은 세계맥주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들이 마시는 맥주가 라거인지도 몰랐고, 에일 맥주라는 생소하기만 했다. 하지만 다양한 판촉활동 속에 이전에는 맛보지 못하던 다양한 맛의 맥주를 접하기 시작했고 결국 수입맥주 판매가 40%를 넘기 시작하며 국내 독과점 맥주 시장에 영향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취향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양한 맛의 맥주를 알게 되었고 본인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대거 늘어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인캐쥬얼 문화의 흐름에 올라탄 소규모 양조장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곳에서만 가면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맥주, 질 좋은 음식, 합리적인 가격과 문화적인 프로그램들이 주목받으면서 대한민국은 때아닌 수제맥주 열풍으로 거듭나고 있다.

필룩세라 효과는 수없이 많다. 지극히 미미해 보이는 작은 사안이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 이제 이 현상을 주목해서 분석하고 그 영향을 만들거나 그것으로부터 내가 취할 수 있는 기회를 들여다 보아야 할 때이다. 바야흐로 연결의 세기가 되었다. 연결성은 그 연결에 포함되는 개체가 조금만 많아져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때문에 작은 사안이 필록세라 효과를 만들어내는 지점 역시 커지게 된다. 분명한 것은 필록세라는 경제적 변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교차점에 존재하고, 이전에 없던 시장에 존재하던 요인들이 기존의 것으로 연결되면서 촉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떠야 하는 것은 새로운 변화의 현상에 주목하는 대신 그 현상을 일으키는 지극히 작은 동인이 무엇인지를 항상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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