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에서 관심으로, 그리고 경험으로

Digilog에서 Dialog로, 그리고 Real World로.

매스 미디어에서 소셜미디어로, 그리고 트랜스 미디어로.

마침내 도래한 새로운 스크린의 서막.

4차 산업 혁명으로 이름 붙여질 진짜 변화의 서막. ‘R’.

 

바야흐로 전자전기기술과 정보처리기술을 위시로 하는 제3차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바이오 등을 기반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이 도래했다고 말한다. 새로운 산업이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고 우리는 커다란 혼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불안을 파는 말들에 속지 않기를 조언한다. 왜냐하면 모든 변화는 사람들의 선택으로 비롯되는 것들이다. 변화는 일면 다른 이들에 의해 일어나는 외부적인 요인처럼 보이지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선택들이 모여모여 일어나는 내부적인 일들이다. 사마천 사기의 간축객서(諫逐客書)의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아지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으며, 병력이 강하면 병사가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태산은 본디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으며(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故能就基深:고능취기심). 마찬가지로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음으로써 그 덕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태산은 한줌의 흙도 버리지 않으므로 저렇게 높아질 수 있고 황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 질 수 있다라는 뜻으로 한 줌의 흝, 작은 물줄기 하나하나가 모여 큰 산과 강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굳이 수천년 전의 고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새롭고 강력한 것이 등장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대의 한 특징으로 규정되기 까지는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고 사용되고 일상으로 스며드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시대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퍼펙트스톰의 전반을 구성하는 큰 뼈대 역시 이와 같다. 단순히 새로움이 등장하는 것을 다루는 대신,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스며드는 모습을 다루고 이후에 일어나는 일상을 관통하는 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어떤 기술과 산업들이 도래하는지를 피상적으로 소개하는 대신, 우리의 일상에서 선택되고 확산되는 지점들을 바탕으로 전체의 변화를 아우르고자 한다. 증기기관의 1차 산업혁명, 대량생산의 2차 산업혁명과 같은 연대기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꾼 선택을 바탕으로 다시 분류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스크린’이다.

제 1 스크린

경험은 집단적인 것

처음 세상은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다. 디지털이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아이들은 바깥에서 구슬치기와 공기놀이, 말타기나 얼음-땡을 비롯 각종 모험 놀이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놀았다. 모든 연결은 가정을 중심으로,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개별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유일한 스크린은 극장이었다. 대한뉴스는 모두가 기다리는 빅 뉴스였고 스크린을 통해서 비추는 신파극은 이들에게는 연애 멜로물이 아니라 판타지물이었다. 극장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보았던 스크린의 이야기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스크린은 그야말로 로망이었고, 세상을 열어주는 소통 채널이었다.
1930년대가 되자 새로운 스크린이 시작되었다. 바로 가정용 TV 스크린이었다. 불과 몇년만에 미국인은 매주 1억 5,000만 시간을 영화 관람에 소비했다. 그럼에도 1946년 당시에는 0.02%의 가구가 텔레비전을 소유했다. 한국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스크린이 혁명이 된 것은 1969년이었다. 아폴로 11호가 지구의 중력을 뚫고 달에 창륙한 순간은 무려 6억명이 시청을 할 정도로 전지구적인 사건이었다.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등장하는 꿈같은 일에 일류가 마침내 한발자국 도약한 순간이었다. 스크린은 동경하는 꿈의 표상이었고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럭키금성 골드스타, 삼성 TV는 하나의 신화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프레임에 들어있는 TV. 손으로 또도독 돌리는 로타리 방식의 스위치로 채널을 맞추는 방식이었지만, 아이들은 로타리 스위치를 돌리는 재미에 가뜩이나 흐릿한 TV화면을 이렇게도 돌려보고 저렇게도 돌려보며 마치 똑똑한 박사가 된 듯한 느낌을 가졌다. 이때의 스크린은 조용히 혼자 보는 용도가 아니었고 특별한 시간대에 온 가족이 모여서 보는, 때에 따라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자리해 보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하루 종일 시간가는 줄 모르게 바깥에서 뛰어 놀다가도 어린이 만화나 영화를 보여주는 시간이면 부자 집 친구네 집에 쪼르르 모여 주인집 아이와 친한 순서대로 줄을 서서 보고는 했다(부자 집 아이의 ‘신임’ 정도에 따라 더 가까이 볼 수도, 친구들의 제일 뒤에 앉아서 봐야 하기도 했다).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시는 엄마의 부름이 야속하기만 했던 그 때 그 시절. 이것이 제1 스크린의 모습이었다. 모두가 공유하고 모두가 함께 나누는 공동의 세상. 개인은 곧 사회의 일부였고, 개인의 모습은 사회와는 분리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의식은 공통체의 그것과 언제나 동일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식을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은 TV와 라디오, 그리고 약간의 전화정도 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접하는 세상의 많은 정보는 미디어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제 2의 스크린 – 세계화와 소가족의 시대.

1980년대 이후의 시기, 바야흐로 대량생산과 세계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를 지배하던 이념전쟁이 마침내 무너졌다. 냉전이 끝났고, 무역장벽이 무너지면서 거의 모든 종류의 무역, 상품, 서비스들이 본격적인 무한경쟁을 시작했다. 비싸기 그지없던 전자제품, 정보기기들의 가격이 일반 소비자도 구입을 고려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 지기 시작했고, 이는 본격적인 소비자 시대로의 진입을 이끌어낸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량 생산과 이를 구매하는 막대한 소비자층의 탄생, 이를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비즈니스 시장이 만들어졌다. 스크린도 마찬가지였다. 잘 살던 사람의 집에나 하나씩 있던 TV는 각 가정에 널리 보급이 되어 언제든지 이웃 신경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TV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집안에 한대 있을까 말까 하던 라디오도 자녀 수만큼 보유할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부모나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 앉아, 라디오를 틀어 놓고 본인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길거리에서도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워크맨이나 마이마이 같은 미니 카세트 라디오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PC나 게임기 한대쯤 있는 집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모였을 때만 볼 수 있었던 각종 쇼, 드라마, 영화, 라디오의 모든 내용들이 이제는 소규모 가족 단위로 맞춰지기 시작한다. 스크린은 이제 마을의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을 위한 것이 되었다. 경험은 훨씬 개인화 되었다.

 

제 3 스크린

소비에서 공유의 시대로

  1990년대로 접어들어들자, 세계화는 심화되었고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각종 전자 기기들은 마음만 먹으면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소유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해졌다. 모두가 한 곳에 모여 함께 보던 TV란 것은 이제 각 방마다 한 대씩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TV를 보기 위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고, 집안에 아예 TV를 보유하지 않는 집도 많아졌다. 스크린은 이제 개인의 손안으로 옮겨갔다. 개인의 손에는 TV시청 기능은 물론 화상 통화 기능과 각종 메세징 기능을 기본으로 가지는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었다. 카메라나 캠코더, MP3, PMP등의 디지털 장치들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저렴해 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디지털 디바이스를 적어도 한 개 이상은 가지고 다녔다.  사람들은 이제 TV를 보기 위해, 전화를 하기 위해, 대화를 하기 위해 특정 공간에 모이지 않았다. 거의 모든 종류의 디바이스들은 손안에 휴대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되었고 모바일, 스마트 디바이스가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휴대폰이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거나 열심히 업무에 몰입하고 있는 때가 아니면, 우리는 언제나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보내고 있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MP3/PMP로 멀티미디어를 감상했다. 누군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 “왜 전화도 안 받고 그래!”, “아 미안! 얘기하느라 소리를 못 들었어” 라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은 시대, 스크린은 모두의 손에 담겨졌다. 한편, 초고속 브로드 밴드 인터넷 망이 전 가정으로 보급되었고, 컴퓨터는 이제 데스크탑을 한 대씩 가지는 것을 넘어서서 랩탑 컴퓨터 역시 한대쯤 가지고 있는 사람이 흔할 정도로 개인에게 널리 확산되었다. 컴퓨터 속도가 느려 인터넷을 못하겠다, 업무를 못하겠다 라는 얘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인터넷은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정보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형태로 평준화되었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가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크린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스크린으로 찍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언제 무엇을 하든 삶의 주인공은 이제 자신이 되었다. 셀카 놀이를 하며 혼자서도 하루종일 노는게 가능한 사람도 많아졌다. 경험은 극적으로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출퇴근 지하철을 타면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서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말을 하지 않은 채 책이나 신문을 보고, DMB로 방송을 보고,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와중에 셀카를 찍는 사람들과 함께. 수백명이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공간의 탄생. 그것이 3세대 스크린이었다. 친구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직접 만나서 아는 것보다 SNS를 통해서 아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디지털 세상, 이곳에는 나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자아가 존재하며, 실세계의 사람들은 가상 세계의 나를 실제의 나 자신과 동일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이제 생산된 제품을 선택하는 수동적 소비자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 생산자의 제품 개발과 유통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프로슈머가 되었다. 제품을 잘 만들어서 잘 광고하기만 하면 잘 팔리던 유통의 단방향성은 사라졌다.

제 4 스크린

스크린은 이제 더 이상 가상의 세상이 아니게 되었다. 현실 자체가 완전히 가상 세계와 통합되는 모습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사물이 연결되기 시작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는 의미가 없다. 사람이 원할 때 디지털 세상에 접속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디지털과 완전히 융합되어 현실 세계에 디지털이 입혀진 형태를 띌 뿐만 아니라 가상 세계의 모습이 현실에도 그대로 동기화 되어 있다. 삶이 그대로 기록되고 그대로 공유되는 ‘라이프쉐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역사상 개인이 가장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세상,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조직이나 그룹에 속해 있는 형태가 아닌 전 인류가 나 자신에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제4의 스크린이다. 그러나 그만큼 드넓은 세상에 홀로 떠 있는 자기 자신을 극명하게 인식할 수 밖에 없는 개인화의 극단. 그래서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혼자임을 자각하게 된다. 남들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어떻게 비춰질까가 가장 관심의 중심인 세상. 그래서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외롭다. 사회 공동체가 곧 나 자신이었던 시대에서 나 자신이 곧 세상인 시대로의 극적인 진화, 조직 속에 나를 묻어가기만 하면 되던 시절에서, 발가벗겨진듯 세상에 드러나 버린 나 자신. 그것이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세상의 중심에 나 자신을 놓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그 무언가의 끝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개인화의 끝은 외로움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단계로의 서막이 열리는 촉매였다. 이른바 ‘뉴 르네상스’가 열리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르네상스는 14~17세기에 일어났던 인류사적 대 사건이었다.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작가,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발명가 등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이끌어낸 작품과 업적은 혁명적이라 할 만큼 인류의 사상과 가치, 문화에 큰 획을 그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는 가장 큰 축은 바로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라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이 속한 종교나 단 하나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만나고 지식과 문화를 교류하면서 급격히 똑똑해지기 시작했다. 지식과 정보가 늘어났고, 급기야 그 수준은 당시의 권력자들을 뛰어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스마트’의 본질이다. 사람들이 똑똑해진 것이다. 인간은 외로워진 것이 아니다. 집단이라는 익명성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개인화되는 만큼, 그리고 외로워지는 만큼, 우리는 내가 속해 있는 집단과는 상관없는, 나 자신의 솔직한 생각으로 걸어 나오게 된다.

제4스크린은 세상의 모든 스크린이 연결되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연결되면서 일어나는 새로운 ‘나 자신으로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존재다. 나 각자의 다름이 팽창하며 그런 다양한 스펙트럼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 연결이 만들어내는 혁명을 열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래서 어떤 기술이냐가 아니라 그런 환경 속에서 무엇이 연결되는지를 살피는 일이고 그 연결이 만들어내는 변화인 것이다.

정보에서 관심으로, 그리고 경험으로

매스 미디어에서 소셜미디어로, 그리고 트랜스 미디어로.

Digital에서 Digilog를 거쳐 Dialog로, 그리고 Real World로.

마침내 도래한 새로운 스크린의 서막.

4차 산업 혁명으로 이름 붙여질 진짜 변화의 서막.

나는 그것을 ‘R’ 이라고 부른다.

퍼펙트스톰, 제4차산업혁명을 창발시키는 거대한 진짜 세상과 교차하는 스크린.

그 시대에 온 여러분을 환영한다.

 

퍼펙트스톰의 새 글을 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빛나는 통찰을 함께 만들어 보세요
* = required field

powered by MailChimp!
/* ]]> */